「Good Morning~ babbabba~」

 아침 6:30분, 시끄러운 소리가 요란히 울려댄다. 누군가가 아침 일찍 일어나고자 맞추어 놓은 알람임이 틀림없겠지만,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을 보면 아쉽게도 알람 소리의 주인은 목적을 이루기 쉽지 않은가 보다.
 시끄러운 소리이기는 하지만 날카로운 기계음이 아닌 부드러운 노랫소리라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나도 이 노래는 알고 있다. 스웨덴의 실력파 아카펠라 혼성그룹인 'The Real Group' 의 'Good Morning'이라니, 아침을 깨우는 음악으로는 더없이 어울리는 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이 노래는 정규 음반에는 없는 곡으로, '아카펠라'를 테마로 한 휴대폰에 내장시키려고 별도 제작된 곡이다.- 알람의 주인인 듯이 보이는 사내는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아직 잠에 취한 몸을 깨우려 해 보지만, 달콤한 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지 이내 쓰러져 잠들어 버린다.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 잠에 빠지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한두 시간이나 잤을까, 다시 사내의 핸드폰이 요란히 울린다. 아까와 소리가 다른 것을 보니 알람이 아닌 것 같다.

 「네-」

 물론 현대의 휴대전화에는 발신자의 이름과 번호가 뜨는 기능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사내는 이 시각에 전화를 걸어올 상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아, 이제 일어났네요. 치료시간에는 늦지 않게 갈게요. 예? 에이 열한 시 전까지는 당연히 도착하죠. 있다 봬요」

 그가 다니는 재활병원의 담당 간호사로부터의 전화인가 보다. 시계를 보니 이미 아홉 시 반을 넘어서고 있으니 지각을 면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람 목소리가 알람 노랫소리보다는 잠을 깨우기 좋은지, 사내는 이불을 치우고 침대를 내려선다. 시간을 보고 서둘러야 한다는 것에 한숨을 쉬고 난 뒤, 깔끔하게 샤워와 면도를 하고 가방을 챙긴다. 문득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오늘은 평소와 같은 날이다.
 하지만, 다르다.

 -병원, 病院, Hospital, びょいん, hôpital, Krankenhaus, ospedale,المستشفى, 医院.-

 오늘이 공식적인 그의 길고도 길었던 병원 생활의 마지막이다. 갑작스레 닥친 일도 아니니 담담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가 보다. 역시 상상과 실제로 겪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잠시 넋이 나간 듯 앉아 있던 사내는 일어나 미처 덜 챙긴 가방을 마저 챙긴 후, 모니터 앞에 놓인 약통에서 자그마한 알약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문다. 짧은 외투를 걸치고, 숄더백을 둘러매고 나서 나가는 길에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조금 전 입에 문 약과 함께 마신다. SILDALUD. 타블렛정. 성분은 Tizanidine HCl 1mg으로, 근 이완 작용을 한다. 먹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는 없지만, lt. hemiplegia 증상이 있는 그는 그 약을 먹어야만 원활한 행동이 가능하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윤활유랄까, 경직을 완화해 자연스럽게 보행하도록 도움을 준다. 그의 경험상 약효는 약 5~7시간 정도. 약을 항상 챙겨야 하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잊는다고 해서 위험한 약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랄까.
 어젯밤 늦게까지 공부하던 여동생은 벌써 학교에 가고 없다. 수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자, 이미 이른 아침이라기엔 너무 밝아진 햇살이 비춘다.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유유히 지하철역으로 걸어간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든 그이지만, 상쾌한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한적한 거리를 걷는 느낌도 더없이 좋아하는 그였다. 손에 커피가 있었으면 좋겠군- 따위의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도시철도 6호선 '효창공원 앞' 역에 도착했다. 이번에 무언가 정책이 결정되었는지 도시철도공사 주관인 5~8호선에서 거의 모든 역사 내에 편의점이 들어서게 된 것 같다. 사소한 것에 호기심이 많은 그는 늘 다니는 6호선 역들에서 이루어지는 편의점 공사를 눈여겨보아 두었었다.
 《역시 큰 역사에서의 편의점이야 더할 나위 없이 호황이지만 원래 승객수가 적은 도시철도 역사 내에서의 편의점이란 딱히 메리트가 없군. 오히려 편의점의 장점인 24시간 오픈이라는 것도 활용하지 못하고 말이야.》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늘 하던 대로 그의 복지카드를 보여주고 우대 무료승차권을 받아 개찰구를 통과한다. 목적지인 응암역의 계단 앞에 내리려면, 탑승층 까지 내려가고 나서 앞쪽으로 두 번째 입구로 승차하면 된다. 가끔은 쓸데없는 호기심도 도움될 때가 있나 보다.
 「It's a lie! (거짓이야!) 전쟁과 평화 모두다! (거짓이야!) 선생, 정치가!」
 조금 기다리다 열차에 탑승하자, 이어폰에선 요새 즐겨 듣는 'Epik High'의 'Lesson2'가 흘러나온다. 후렴구가 마음에 든 것일까, 반복해서 한 곡만을 듣던 그는 어느새 목적지인 응암역에 도착했다.
 「이번역은 응암, 응암 역입니다. The next station is…」
 늘 그랬던 것처럼 바로 계단 앞에서 문이 열린다. 출근 시간대의 응암역에는 내리는 사람이 꽤 많은 편이라 북적인다. 탑승층은 지하 3층에 있어서, 계단을 세 번이나 올라야 한다. 그 중 한번은 에스컬레이터이긴 하지만, 여전히 나오기엔 시간이 좀 걸린다.
 「자- 남성 사각팬티가 박스에 천원-」
 「어이- 여기 여기 좀 와봐- 혼자서는 좀 무거운데.」
 늘 나오는 2번 출입구로 나오자, 의류 폐업정리를 하는 곳의 호객 소리와 새로이 가게에 입주하려는지 무언가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버스 정류장 쪽의 보도에 공사를 위해 가져다 놓은 트럭이 막고 있어, 그는 게걸음을 하여 겨우 통과한다. 응암역에서 병원까지의 버스는 지선 노선인 7022번과 간선 노선인 702 두 가지가 있다. 병원까지의 노선은 겹치기 때문에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이용해도 무관하다. 그래서 버스를 오래 기다리는 경우는 좀체 없는 일이지만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인가 보다.
 「아 이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으려나.」
 정류장을 바로 앞에 두고 자신이 타야 하는 버스 두 대가 힁허케 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특히 뛰기만 했어도 탈 수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는 뛸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른 자세로' 뛸 수 없다고 할까, 절룩거리며 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로서는 그다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감수할 만큼 급박한 일이 아니면 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잠시 정류장에서 기다리자, 이내 다른 버스가 도착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욕심쟁이 인간이군…. 불과 몇 개월 전 이 병원에 입원할 때만 하더라도 '대중교통이라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 놓고서는….》
 버스에 오르며 생각한 그는 곧 피식 웃어버렸다.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병원까지는 대략 서너 정거장, 도보로는 15분 정도의 거리이다. 정거장에서 내리고 나서도 약 5분 정도를 걸어 병원에 도착하였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다. 물리치료실에 들어가며 송인의 선생님, 송윤정 선생님, 이지현과 정영환 선생님 순으로 인사를 드리고 옷장에 옷과 가방을 벗어 둔다.
 「이야 재민이 일찍 왔네-」
 「여어- 너 머리 좀 어떻게 해라.」
 늘 반갑게 맞아 주시는 분들이다. 지금이야 일주일에 이틀만을 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 5일을 뵙고 지냈던 터라, 친근함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분들이다.
 「오늘 퇴원 수납해-」
 「으이그 알았어요. 설마 그냥 갈까 봐요?」
 담당간호사이자 낮병동의 유일한 간호사이신 이지현 선생님과도 가볍게 인사 겸 농을 하다가 이내 곧 오전 작업치료 시간이 되어 작업치료실로 향한다. 원래 오늘 퇴원 평가를 해야 하겠지만, 지난 화요일에 미리 한 관계로 일상적인 치료를 계속하였다.
 「야야- 약 받으러 오면 여기도 와서 나랑 손수영 선생님도 보고 가. 사는 이야기도 좀 해주고-」
 「내가 왜 보러와? 나도 바빠 왜 이래.」
 그의 담당 작업치료사인 정재은 선생은 딱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싫은 사람도 아니기에, 마지막 인사 겸 농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되었다. 밥을 빨리 먹는 편인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뚝딱 상을 치우고 물 한잔을 들고 물리치료실로 가서 어쩌다 보니 '전용석'이 되어버린 이지현 선생님 앞에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았다.
 「야 오늘 밥 뭐냐?」
 식당의 밥이 영양은 있을지 몰라도 그다지 요리를 맛있게 하는 것은 아닌지라, 식사시간이 치료사들보다 이른 환자인 그에게 메뉴를 묻는 것도 빠지지 않는 일상이다.
 「에…카레랑 무슨 흰살생선? 그냥 먹을 만해요.」
 양식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거의 가리지 않는 식성인 그도, 병원의 식사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가 보다. 물론 678원으로 이 정도의 한 끼 한 상을 먹을 수 있다는 걸로도 불만의 소지가 없기는 하지만 '맛이 없다.'라는 생각보다는 '이 재료로 이것밖에 못 하나' 에 가까운 불만이다. 그리고 사실 부담금이 678원이지만 보험부담금을 합한 실제 식대는 3390원이니… 식사에 대한 불만을 단지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뭐, 좋든 싫든 병원 식사를 다시 먹을 일은 없어야겠지.》
 잠시 병동에 혼자 있게 된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떨쳐버린다. 오늘은 정말 아침부터 기분이 야릇한 것이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다. 싱숭생숭하면서도 차분하고, 지난 1년이 회상되는 일이 많다.
 「아휴, 또 약하고 씨름이다.」
 「이야- 많네요. 약장수야 약장수.」
 식사를 마치고 오신 이지현 선생님은 또 약 더미에 파묻혀 환자들에게 나누어주기 전에 약이 제대로 조제되었는지 확인을 하신다. 수많은 약 봉에 모두 같은 약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보며,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그만의 생각이 아니리라. 심심풀이로 아까 물을 마셨던 종이컵으로 바람개비를 만들어 달력에 꼽아 두고, 다른 환자 아저씨의 심부름으로 모두 먹을 호떡도 사 와 먹고 나서 물리치료시간이 되어 매트로 가 앉는다. 담당인 송윤정 물리치료사는 늘 밝은 표정에 호쾌한 성격의 여장부이다. 두 살 터울밖에 나지 않는 탓에 친구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는 것도 많고, 머리도 좋은 대화가 잘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언제 주안오면 연락해- 밥 사줄게.」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참 고맙다. 치료 시에도 귀찮을 법도 한 질문들에 성실히 답해 주고 무언가 새로운 동작을 하게 되면 소상히 설명해 주어 마음에 드는 치료사이다. 그의 병원 생활 마지막 담당 치료사가 이 사람 이라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문득 '치료사들도 나를 담당하게 된 것을 좋은 일로 기억할까' 라고 잠시 생각하다 이내 휘휘 지워버린다.
 치료시간이 끝날 즈음 악수를 청하며,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응. 너 집에서도 운동 해야돼!」
 그리고 늘상 하던 대로, 이지현선생님에게 가 혈압과 심박수를 잰다.
 「…90에 70이고 56회.. 열 없음!」
 《마지막까지 60을 안넘는구나. 어휴》
 박동이 좀 느린 편인 그의 심장은 오늘도 초당 1회도 뛰지 않는 게으른 녀석이었다. 그리고 담당의이신 최유남 과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치료실을 나섰다. 옆의 본 병동 원무과에서 퇴원수납을 마치고 나오자, 색다른 기분이 든다.
 「끝이다-」
 그래, 이제야말로 서류상으로도 완전히 퇴원을 한 것이다. 손목시계의 버튼 두어개를 누르자, 'ACCIDENT D-419 DAYS' 라는 문자가 보인다. 사고일로부터 419일째, 드디어 서류상으로까지 입원생활을 청산하였다. 응암역으로 걸어 가는 길에서도 온갖 생각이 밟힌다. '이 길을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것도 끝이구나.', '역 앞 피자집에도 자주 못오겠네.' ,'불광천에도 자주 올일은 없겠다. 이동네 그래도 마음에 들었었는데 말야.'……. 아침과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는다. 지난 9월 15일, 발병 1년이 되는 날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었는데, 지금의 감정이 신기하다고도 생각하는 그였다.
 《419일 이라니 참 시간이 빠르네. 신기하게도 다른 해와 달리 거의 매일매일이 기억에 남는 한 해였지. 참 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게 되었고 많은 일을 겪었구나. 처음 만나게 된 사람은… 그래, 우리 집에 오셨던 119 대원분이셨지.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떄의 상황 순간 순간이 3차원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건 신기해…. 그리고 나서는, 중환자실에서 당시 간호실습생이었던 상미누나와 효희누나, 장태은씨를 만났지. 그때 기억만 거의 공백인 건 지금도 좀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야. 내가 이런 일이 있었을때 우연히 근처에 있던 것이긴 하지만 곁에서 친구로 있어 주었던 상미누나에겐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마음뿐이지만 여러 가지로 미안하긴 해. 그 왜 전에 첫 외출이 코엑스에서 상미누나 합격축하였나, 그런 일로 본 것이었는데, 간만에 나온 사회인데다 외출 자체에도 두려움이 있을 때라 폐만 끼쳤었지. 일반병실로 나와서는 친절한 서경원 간호사도 만나고. 그 다음 갔던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에서는 헌상이형과 치훈이형, 정은이와 지원이누나를 만났지. 뭐 치훈이형과 지원이누나하고는 연락이 뜸하긴 하지만. 국립재활원에서는 새로 알게 된 사람이 거의 없구나. 산바람이 시원해서 좋았지. 담당 과장님이신 김완호 선생님은 참 인상이 선하셨어. 개인적으로 책도 선물해 주시고 말이야. 나중에 병원생활 끝나면 다시 한번 찾아오라고 하셨으니, 뵈러 가야겠어.  그 다음으로 온 서울재활병원, 처음엔 병원에 또 입원한다는 생각에 눌려서 며칠 우울해했지만 사람들과 친해지니 또 재미있었지. 심심풀이로 이것저것 소일거리고 하고 말야. 괜찮았던 것 같네.》
「이번역은…효창공원 앞-용산구청-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방송 소리에 놀라 급히 내린다. 아침에 걸어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
 그의 지난  419일은 보통의 24세 청년에게는 흔하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불행으로 시작된 길, 끝까지 불행의 길로 갈 수도 있었으나 그는 이 길을 오게 된 것에 후회나 원망이 그리 크진 않다. 신이 그것을 되돌려 준다고 한대도 고민할 만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겪었으며 그들과의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었을까. 집으로 가는 그의 뒤에 저물어가는 햇살이 비춘다.
《나의 지난 1.164년. 10060.8시간. 603649분. 그리고 36218940초.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소중하고 즐거운 기억이다. 이 모든 시간을 잊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간 블로그도 데이터가 손상되고 글을 적을 마음도 잘 생기지 않고 해서 꽤나 오랫만에 쓰게 되었다. 예전에 쓰던 그것과는 문체가 좀 달라진것 같다. 쓸 때는 괜찮다 싶었는데 막상 맺고 보니 영 졸작인것 같아 아쉽다. 형식 자유의 수필이기는 하지만 지적할 부분이 보인다면 짚어 주시기 바란다.